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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0원’ 가능…이게 실현될 수 있는 이유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낮춰주는 에어컨이 제격입니다. 그러나 서민들은 전기요금 폭탄 걱정에 켰다가 껐다가 안절부절 못합니다. 에어컨이 밥상 위에 매달아놨던 굴비가 된 느낌입니다.
그런데 전기요금을 한 푼도 안 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외국 이야기입니다. 핵심 키워드는 태양광 발전기와 전기자동차입니다. 태양광이야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전기차는 의외죠. 전기차가 거대한 배터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전기가 남을 때 충전했다가 부족할 때 내보내주면 차익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발전 사업 전문가인 이민호 미국 변호사는 "이러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중요한 전제는 분산된 전원에서 생산된 전력을 사고 팔 수 있는 전력 시스템"이라고 강조합니다. 즉 건물지붕, 전기차, 가정용 배터리에서 생산된 전력을 생산자인 시민들이 도·소매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면 전력산업을 민영화하자는 것인가요? 이 변호사는 "이러한 경쟁 전력시장이 꼭 민영화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합니다. 미국의 경우 이미 독점 발전을 하던 대형 민간기업의 발전소를 매각하도록 했을 뿐, 산재해 있는 공공 소유의 발전-송전-배전 통합회사는 그대로 두고도 가능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이 변호사는 "답이 없는 상황이 오래되었다"고 탄식합니다. 우리나라 도매 전력시장은 가격 결정 차원에서 시장의 기능이 없으며, 전기위원회는 선진국들과 달리 독립 규제기관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개인들이 전력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겁니다.
손꼽히는 경제대국이 되고 K-팝을 수출하는 대한민국이지만 에너지 분야에서 만큼은 여전히 후진적인 모습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부산에 있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을 아시나요? 이곳에서 발행하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의 이윤영 편집장이 <소셜 코리아>의 '뷰' 고정필진에 합류했습니다. 소코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편집장은 최근에 화두가 되고 있는 사교육 문제를 생각합니다. 그는 현재 벌어지는 "지극히 식상하고 낡은 방식"이 못마땅합니다. 근본을 성찰하지 못한 채 현상에만 집착하는 세간의 논의 수준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삶을 들려줍니다.
세풀베다의 첫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노동자들의 권리와 자연 보호를 외쳤던 사회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기 위한 소설입니다. 멘데스는 숲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것임을 깨닫고 자유와 생명의 가치를 외쳤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그것을 두려워한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주인공 안토니오는 밀림에 개간 사업을 하러 갔다가 아내와 동료들을 잃고 이제까지 해왔던 일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원주민 친구마저 잃게 되고, 그는 완전히 혼자가 되어 노인이 될 때까지 숲속에서 삽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연애 소설을 읽는 것뿐입니다. 한 음절, 한 단어, 한 문장을 차근차근 완전히 자기 것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습니다.
이 편집장은 이 소설에서 "사랑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한 인간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세풀베다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세풀베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양식이었습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 앞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의 토대다." 본질로 돌아갈 때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분쟁과 관련 없는 외부인이지만, 사적 이익을 위해 군사 분쟁에 참여하는 사람. 국제법상 용병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법상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용병은 기원전 401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키루스가 그의 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왕위를 찬탈하고자 그리스에서 1만 명의 용병대를 고용한 것. 이후 로마,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용병은 광범위하게 활용되었습니다. 로마는 광대한 영토를 방위하기 위해 게르만인을 용병으로 사용했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15세기 스위스의 소국들은 용병들을 하나로 묶어 유럽의 각 세력들과 용병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류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명나라군에도 용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흑인에서 백인까지 골고루 있었다고. 그러나 중국이 가장 많이 고용한 용병은 유목민 기병입니다. 특히 몽골 기병을 즐겨 썼습니다.
근대 들어서는 용병의 선발, 훈련, 계약 등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기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권국가가 출현하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용병이 다시 등장한 것은 세계 2차대전 이후. 여러 식민지가 독립하고 세계 각지에서 내전과 쿠데타가 빈번히 일어나면서 용병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에는 용병단이 기업화되어 민간군사기업(PMC)의 형태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남아공, 러시아 등으로부터 비롯된 수백 개의 PMC가 전 세계 약 50여 개국에서 활동 중입니다. 현대의 PMC 중 유명한 곳으로는 미국의 아카데미와 러시아의 바그너그룹이 있습니다.
용병이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사례도 다수 있습니다. 게르만족 출신 용병으로 서로마제국 사령관을 지낸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제국 황제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바그너그룹 대표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이 사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