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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직접 은행을 세운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입니다. 장종익 한신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1999년 수천 명의 시민과 18개 단체가 힘을 모아 설립한 이탈리아 방카 에티카를 소개합니다. 사회주택 건설, 재생에너지 시설 확충 같은 사회·환경적 프로젝트에 시민이 직접 예금하고 투자하는 '가치기반금융협동조합'입니다. 이곳은 현재 조합원 4만 8천여 명, 총자산 28억 유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프랑스, 캐나다 퀘벡에도 비슷한 모델이 오래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60년 넘게 신협·새마을금고·지역농협을 규제로 묶어두고, 협동조합기본법은 금융·보험 분야 협동조합 설립 자체를 막고 있습니다.
장 교수는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과 정책금융의 한계를 넘을 대안으로 '사회연대경제'를 주목합니다. 이재명 정부도 이를 국정과제로 설정했지만, 지금까지의 사회적경제 정책은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반납하고 이윤추구 기업으로 퇴행해도 막을 방법이 없고, 협동조합의 절반이 휴업 상태입니다.
이제는 과거 보수 정부 때 형성된 정책 틀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할 때입니다. 핵심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금융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장 교수는 사회적 가치 프로젝트에 시민들이 예금하고 투자할 수 있는 협동조합형 금융중개기관 설립 허용, 베이비부머 세대의 사회투자 촉진, 사회적 예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안합니다. 외국 금융기관에는 이윤추구 금융비즈니스를 자유롭게 허용하면서 지역 뿌리 금융기관은 규제로 묶어두는 이중성을 걷어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시민이 참여하고 정부가 협력하는 사회연대경제로 전환하는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본문에서)
지난 4월, CU 물류센터에서 화물연대 조합원이 대체차량에 치여 숨졌습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 죽음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구조적 모순이 낳은 비극이라고 말합니다. 이후 노사 합의 내용인 기본운송료 인상, 유급휴가, 노동조합활동 보장은 다분히 상식적이고 최소한의 내용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상식조차 죽음이 있어야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약 8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은 노동법 적용에서 제외된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핵심에는 작년 9월 개정된 노조법 2조,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있습니다. 원청이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하면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으로, 3월부터 시행됐습니다. 그런데 사망사고 직후 노동부는 이 사안이 원하청 교섭문제가 아니라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자신들이 추진한 법 개정의 취지를 스스로 부정한 셈입니다. 보수언론은 이번 사태를 노란봉투법으로 인한 혼란의 증거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남 소장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개정법 취지에 따른 단체교섭 확대 지원이라고 강조합니다. 동시에 근로자 추정제도를 제대로 설계하고, 일하는사람기본법의 내용도 실질적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현재 정부안은 입증 책임만 전환하는 절차 개선에 머물러 있어, 법적 분쟁이 생기면 협소한 대법원 판례 기준으로 환원될 위험이 있습니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노동현장의 죽음은 계속됩니다.
"헌법상 노동권 보장과 혼란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역량을 집중할 때다." (본문에서)
출생아 수는 20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분만 뺑뺑이 뉴스는 줄지 않습니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은 이 역설의 구조를 짚습니다. 분만 건수가 줄자 시장은 미래를 예측하며 움직였고, 지역 분만 기관은 출생아 감소보다 훨씬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현재 연간 200건 이상 분만을 하는 기관은 전국 270개에 불과하고, 권역모자의료센터 20개 중 절반이 산과 전문의 4명이라는 필수 인력 기준을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보조생식기술 발달로 고위험 다태아 분만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인프라는 줄고 위험 분만은 느는 역설입니다.
김 운영위원장은 당장 수천 명의 산과 전문의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현재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기능이 미흡한 분만기관을 과감히 정리하고 의료진을 거점에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필연적으로 거점에서 먼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낮춥니다. 그래서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산전관리는 가까운 곳에서, 분만은 거점까지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송하는 지역화 전략과, 이 불편함을 누가 감수하고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시민이 함께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김씨는 분만 뺑뺑이 문제가 의료정책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강조합니다.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는 전문가가 아니라 시민이 함께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시민이 함께 결정해야 할 문제다. 숙의 민주주의가 나설 차례다 " (본문에서)